단 한 번뿐인 (*daguerreotype)  - 변종모

그는 태어났다
이른 새벽에 태어났고
늦은 밤에도 태어났다

그는 살아간다
너른 평원에서도
혹독한 눈보라 속에서도

간혹
찰나의 순간만큼 살아 있다가
그것이 영원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는
언제 어디서나 살아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빛으로 삶의 지도를 그린다
바깥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바깥을 보여주고
안으로 숨은 사람들에게
더 깊숙한 안쪽을 보여준다

수시로 가슴 속으로 별이 지고
드물게 일식이 일어나는 현상처럼
찰나의 순간에도
모든 우주의 방향으로 걷는다
아니다
걷는 것이 아니라 부름을 받는 것이다

작은 꽃들 보다 더 작은 호흡으로 그것을 건져내며
거대한 빙하 보다 더 큰 대담함으로 버틴다
사소한 것에도 무릎을 꿇고 입 맞추며
강렬한 것에 가슴을 열어 휘어지지 않는다
다만, 그 모든 것을 품는다
무섭지 않다 그런 모든 일들이
마음 속 깊이 인화된 사소한 풍경 하나가
거세게 몰아칠 때면
살아있는 모든 것을 거부할 수 없는 삶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안다

그는 태어났다
남들이 잠든 사이에 태어나
남들이 죽어가는 시간에도
여전히 살아갈 마음으로 매일매일 태어났다

찰칵!
이것은 그대를 부르는 소리다
그리고
다시 그가 태어나는 소리다


추천사 

나는, 아이슬란드 그곳에 가기 싫어졌다.

남인근작가가 자주 아이슬란드로 떠났을 때, 서울 하늘 아래에서 그가 서있는 곳을 상상했다. 깊은 밤 신비롭게 노래하는 오로라의 얼굴, 구름과 손을 잡은 광활한 빙하의 목소리, 검은 모래 위로 몰려다니는 새하얀 파도의 언어 그리고 투명하게 남겨진 얼음의 뜨거운 심장 하나. 하지만 이내 그 상상이란 것이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상상이 그가 가지고 돌아오는 사진 보다 아름다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므로. 그러니까 상상 보다는 그가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게 낫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사진은 언제 어디서 보더라도 나를 그곳에 서있게 한다. 그의 사진은 보는 것이 아니라 그곳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풍경을 대하는 그의 자세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겸손하고 평온한 그의 사진에 그런 자세가 있다. 때로는 찰나를 위해 오래토록 차가운 바닥과 자신의 심장을 잠시 바꾸었을 것이며, 때로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파도에 고통스러운 발목을 그었을 것이다. 그것이 보인다. 그날의 공기와 바람과 모든 온도, 끝내는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 끝의 감각까지도. 그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들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다녀오게 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칼날 같은 파도도 부드러운 구름으로, 단단하고 두꺼운 얼음장도 이른 아침 애인의 방 창문처럼 투명하게 만드는 따뜻한 시선이 간혹 그곳의 온도를 잊게 한다. 계절과 장소에 상관없이 평온한 곳에 서 있게 한다. 그것이 남인근의 힘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욕심을 낸다. 누구든 그곳엘 가면 그런 평온한 풍경을 가져오게 될 거라고 욕심을 내게 한다. 그 욕심은 나쁘지 않다. 나 역시 매번 그의 사진을 볼 때마다 그런 욕심을 내므로. 그는, 그가 가져온 풍경 속에서 자신의 고통을 자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 고통이 아무렇지 않게 때문에. 그것을 애써 감추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오로지 그여서 가능한 일. 그것이 그가 풍경을 담아내는 자세이며 힘이다.


한때, 그런 그가 부러워서 좋은 동행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매번 짊어지고 돌아오는 배낭 속에서 나 같은 여행자가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것을 풀어놓는다. 이번에 발간되는 사진집 속에서도 역시 그의 시간과 마음과 생각 그리고 그의 대부분을 본다. 남인근만이 가능한 풍경들과 이야기들을 발견한다. 그래서 방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차라리 자주 떠나는 그의 배낭에 무언의 용기를 불어넣거나, 돌아온 자리에서 꽁꽁 얼어버린 그의 차가운 손을 잡아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아이슬란드 그곳에 함께 가기 싫어졌다. 당분간 나는 아이슬란드는 가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의 사진으로 여행을 해도 충분 할 것이므로. 이 모든 것이 결국 남인근작가 때문이다. (2017)


-여행작가 변종모

 오랜 여행자.
여행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어 여행하듯 산다.
살아가듯 여행한다.
되도록이면 오래오래 여행자로 남고 싶다.
그래서 조급하지 않게
그러나 부지런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날들을 기억하면서.
 저서: 짝사랑도 병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같은 시간에 우린 어쩌면.

서늘한 유혹

올해 3월 네바다로 출국하던 날 인천국제공항에서 짐을 부치던 중에 ‘노안老眼’ 때문에 사용하던 안경을 잃어버렸다. 낭패였다. 우선 LA까지 가는 시간만도 열 시간 이상 걸리는데 기내에서 모니터를 보거나 책을 읽는 일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간단한 입국카드를 쓰는 것조차 안경이 없으면 더듬거릴 판이었다.


그때, 인천 출국장 면세점에서 기성 제품이라도 혹시 돋보기를 구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일었다. 대부분의 해외 공항 면세점에서 돋보기를 판매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한 번은 홍콩 공항에서 안경태가 마음에 들어서 대충 눈에 맞는 돋보기를 구입했던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계 어디를 가나 나이든 여행객들이 많다. 그러니 대다수의 공항에선 그들을 배려하는 편의용품이나 돋보기와 같은 상품들을 면세점에 갖춰놓고 있다. 믿어보는 것이다. 21세기 세계의 선진국이라 자처하는 한국의 인간존중 경영을 믿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인천국제공항의 면세점이란 면세점은 다 돌아보았지만 어느 한 곳에서도 돋보기를 판매하는 곳은 없었다. 대부분 2~3만 원 대의 돋보기라 할지라도 다른 국가의 공항들에선 선글라스 옆에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었지만 인천공항은 달랐다. 오히려 그런 걸 여기서 왜 판매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는데, 면세점이 단지 명품이나 할인해서 파는 곳으로 여기는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공항을 통해 한국을 찾는 수많은 외국인들 중에 돋보기를 필요로 하는 여행객들이 40대 이상이라면 부지기수일 텐데 명품 선글라스만 가득한 면세점에서 그들은 무엇을 느끼고 갈까 하는 생각이 들자 더욱 얼굴이 화끈 거렸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안경을 포기하고 눈뜬장님으로 열 시간 이상을 비행해야 할 판인데 같이 가는 일행들의 걱정을 달래며 대답했다. 아마도 이렇게 비인간적인 공항은 한국이 유일할 것 같다며 LA 공항에는 반드시 공항 내에서 돋보기를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했다. 일행들이 그걸 어떻게 장담하느냐 묻자 나는 한국보다 더 낙후된 국가들의 공항에서조차도 돋보기를 판매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사실이었다. 그러니 LA 공항은 나도 초행이었지만 어쩐지 믿음이 갔었다.


드디어 열세 시간의 비행이 끝나자 LA 공항 내에서 나는 어렵지 않게 안경점을 발견했고 그곳에서 내 눈에 0.5 단위의 도수까지 정교하게 맞는 돋보기를 구입할 수 있었다. 고작 17달러 정도의 상품이었지만 직원은 친절하게 내가 원하는 모양과 색상까지 일일이 찾아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일행들이 내가 인천국제공항 면세점들의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얄팍한 상술에 대해 투덜대던 것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다는 눈치였다.


그렇다 나는 이제 ‘노안老眼’으로 돋보기 없이는 가까이에 있는 글이나 영상을 더 이상 읽거나 보지 못 한다. 간혹 광활한 고원이나 사막 지역을 장기간 여행하고 돌아오면 일시적으로 시력이 좋아져 스마트폰의 메시지를 안경 없이도 읽을 수 있게 되지만 역시 얼마가지 못하여 노안은 다시 발생한다.


그런데 불과 1~2년 사이 급격하게 찾아온 노안 때문에 나는 달라진 것이 있고 새롭게 보게 된 것이 있다. 가까이 있는 것을 보는 것이 불편하게 되자 반대로 멀리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나는 주로 인물의 내면이나 사건의 구조를 바라보는 사진작업을 이어왔다. 이것은 원경이 아닌 근경이다. 대상에 가깝게 다가서야 하고 마이크로 스코프로 관찰하듯 분석해야 하며 정밀하게 해체하고 다시 재구성하는 피곤할 정도로 미시적 시야를 동원해야 하는 영역의 작업이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헐렁해 보이는 풍경이 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대부분 나의 사진 강연에서도 풍경은 늘 후순위였다. 고작 강연에서 한다는 조언이 ‘풍경에도 결국 사람이 들어가야 완성’이 된다는 너스레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나의 너스레를 무색케 할 정도로 근사한 풍경을 쏟아내는 사내가 등장했다. 등장했다기보다는 이제야 내가 발견하게 된 것이다. 노안으로 먼 곳을 바라보기 시작하며 발견한 보물 같은 사진가다. 돌이켜보니 그가 나의 지척에 함께 공존하고 있었던 시간이 제법 오래되었으리라 짐작된다. 낯익은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남인근, 바로 그가 문제의 사진가다. 여행자라 불러도 마땅하고 ‘작가作家’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사진과 인문을 겸비한 근래에 보기 드문 인재다. 왜 나는 그를 더 진작 알아보지 못 했을까는 앞서 이야기했다. 어쩌면 내게 노안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도 그의 서늘한 풍경들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 했을 터다.


게다가 누구라도 한 번쯤은 직접 보고 싶은 아이슬란드의 몽환적인 풍경들을 그는 그만의 방식과 노력과 성실함으로 그려냈다. 3년간 아홉 차례나 아이슬란드를 오가며 중간에 쉽지 않은 병마를 겪으면서도 주저앉지 않고 끝까지 그만의 행성을 그려냈다.


솔직히 나는 그의 사진을 보자마자 감탄을 쏟아냈다. 국내에서 소문난 사진의 대가라 하여도 어지간하여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사진들은 좀처럼 드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남인근의 사진을 보자마자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마지막 아홉 번째 아이슬란드 여정에 올라 부재중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최대 규모의 사진전문 아트페어인 K’FOTO 부산국제사진페어에 그의 공간을 마련했다. 예상대로 대중들의 반응은 고무적이었다. 작가를 함께 소개하지 못 한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많은 이들로부터 작품에 대한 질의가 들어왔다. 준비된 작가에게 당연히 쏟아지는 관심이다.


최근 내게 아이슬란드는 몇 년 전 개봉했던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등장했던 장면들로 인상 깊었다. 나약한 도시 직장인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월터(벤 스틸러)의 자아실현이나 성장 배경으로 어울리는 장소가 아이슬란드 말고는 또 어디에 있을까를 감독 역시 생각하지 않았을까? 월터가 그린란드에 도착했을 때의 배경마저도 사실 아이슬란드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인터스텔라’ 역시 아이슬란드에서 촬영되었다.


그만큼 아이슬란드는 원형의 자연을 가지고 있고 최초의 지구 같은 또는 외계의 행성 같은 풍경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곳이다. 월터는 이곳에서 끝없이 존재에 대한 질문을 찾고 대답을 구하느라 분주했지만, 사진가 남인근은 수도자처럼 고요하고 정제된 풍경으로 또 다른 아이슬란드의 감동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예의, 같은 아이슬란드 다른 풍경이다. 하나의 질문에 월터와 남인근은 각자 다른 방식의 답을 보여주었다. 묘하게 남인근의 아이슬란드 풍경 역시 영화의 주제이기도 했던 라이프지의 모토와 맞닿아있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the purpose of life)”


서늘한 그의 풍경들이 한 권의 사진집으로 태어난다. 노안으로 나는 더 먼 곳을 바라보게 되었고 사진가 남인근이 3년 전부터 준비해 오던 아이슬란드의 풍경과 직면했다. 나는 그의 노고 덕분에 내 스스로의 장애물을 넘어 좀 더 아이슬란드에 가깝게 다가갔고 알아가고 있으며 느끼고 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 중의 하나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갑자기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 1년 정도 세를 얻어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동차로 16시간 정도면 링 로드를 모두 돌 수 있다는 아이슬란드, 그러나 남인근은 그곳을 3년을 오갔다. 그만큼 그의 작업들은 진중하다. 문득 아이슬란드에서 내가 소식을 전한다면 그건 모두 사진가 남인근의 서늘한 풍경들 때문이다. 모처럼의 기분 좋은 유혹이다. (2017)


- K’FOTO 부산국제사진페어 2016 운영위원장 이홍석
저서 : 여행사진의 아우라(시공사, 2011), 몽중인(바우하우스, 2009), 슈퍼라이터(시공사, 2009), 카메라를 던져라(푸른솔, 2006)

겨울이 겨울에게
사진이 당신에게



어쩌면 내가 남인근이란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도 북해도 비에이 사진이었는지 모르겠다.
웬만한 풍경사진에 눈도 꿈쩍 않던 내가 보자마자 감탄사를 연발한 것도 처음이었고,
예쁘기 만한 쨍 한 아름다움에 그리 큰 점수를 안주던 내가
아스라한 공명과 서글픈 잔영에 가슴 아렸던 것도 처음이었다.
사진가의 존재보다 사진의 존재를 먼저 알아버린 유일한 케이스였다.

남인근의 비에이 풍경에 매료된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 이유는 같다.
Winter... Window... Wind... 그러니까 그의 사진에는 겨울이 있고,
그 겨울을 바라보는 창문이 있고, 그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이 있다.
이것들을 바라보게 하는 사진이 남인근의 사진이다.

어원을 따라가면 바람(Wind)이 구멍을 낸 것이 창문(Window)이고,
바람이 사는 곳이 겨울(Winter)이니 이들이 한 곳에서 태어나 자란 곳이 겨울 아니겠는가.
남인근의 겨울 풍경은 바로 이것들을 바라보게 하기에 내내 빠져 나오기 힘들었다.

겨울이 겨울에게...
이런 제목을 달 수 있는 사진작가 참 멋지다.
이런 풍경 속에 살아가는 남자 참 아름답다.
풍경은 말 그대로 바람(風)을 보는(景) 것이다.
겨울 풍경은 말 그대로 겨울 바람을 보는 것이다.
남인근의 겨울풍경에 포로가 되는 이유이다.

작게 ... 외롭게 ... 사라지게 ... 그리도 또 ... 그립게 ... 아프게 ...
이것이 남인근의 겨울의 모습이다.
겨울이 겨울에게(겨울을 사랑하는 자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그가 말한다.
“겨울에 길들여진 내가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겨울 같은 당신에게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살고 싶어서 아프다.”고.
세상에 이리 겨울을 잘 아는 사진가가 있을까.
또 이리 겨울의 속살을 만지는 남자가 있을까.

겨울은 여린 것이다.
너무 작아서 여린 것이고, 작고 여리기에 외로운 것이고,
그렇게 외롭기에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라짐이 있기에 겨울은 그리운 것이고,
너무 그립기에 못내 아쉽고 아픈 것이다.

남인근의 겨울에는 이 모든 것들이 있다.
그리움은 바람을 따라 흐르고 서러움은 눈을 따라 내리고
애잔함은 소리를 따라 사라진다.
이 아프고 서러운 풍경들을 우리는, 아니 우리 모두는 겨울창가에서 넋 잃고 바라본다.
그리고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눈부셨던 봄날을, 뜨거웠던 여름을, 푸르렀던 가을을,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우리의 지난 시간을.
이것이 겨울이 겨울에게 주는 아름다운 기억, 추억이라는 감동이다.

사진은 추억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사라짐이 있기에 사진이 존재한다.
사진이 남인근 사진작가에게 속삭인다.
당신이 있어 행복했다고 ...
당신의 카메라가 존재의 소소함을 놓치지 않아서 행복했다고 ...
당신의 눈길이 아주 작은 의미 하나까지 보듬어서 행복했다고 ...

그렇게 어느 해 겨울 눈 속 실낱 같은 존재들에게
당신이 생명의 숨을 불어 넣어 준 것
그리고 말 없는 존재들에게 말할 수 있게 해 준 것,
그 모질고 차가운 바람 속에서 당신이 마주한 익명의 존재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 준 것,
그 익명의 존재들의 서러운 미완의 포즈들을 보듬어 준 것,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남인근 당신에게 감사하다고.

사진은 무엇보다 바라봄이며 그런 다음 알아봄이다.
바라봄에서 시작한 한 장의 사진은 누군가의 마음이다.
한 장의 사진에서 느끼고 행복감 그리고 사진과
감상자 사이에 울리는 공명과 여운은 사진이 주는 소소한 감미로움이다.
이것을 교감이라 하고 그 교감에 따른 울림을‘아우라’라고 한다면
남인근의 겨울보다 그립고 아름다운 아우라는 없다.

이런 작가를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고,
이런 남자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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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평론가, 현대사진연구소 소장
진동선 Jin, Dongs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