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마추어 사진가의 아쉬움

글 : 신구대학교 사진영상미디어과 이준식 교수



[발췌]

어느 아마추어 사진가의 아쉬움
글 : 신구대학교 사진영상미디어과 이준식 교수


며칠 전 졸업한지 20년이 다 되가는 오랜 제자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자기와 아주 가깝게 지내시던 분이 최근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분이 평소에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을 돌아다니시면서 사진촬영을 하시는 것은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아름답고 멋진 사진을 많이 남기셨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많은 멋진 사진들을 보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에 대해서 내게 자문요청을 해온 것이다. 그런 후 며칠 지나서 제자가 가져온 두 권의 앨범에서 나는 그 아마추어 사진가의 긴 여정의 발자취와 그의 호흡을 느낌과 동시에 무언가 한 켠의 아쉬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분이 사진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촬영해 놓은 다양한 결과물들을 검토해보니 꽤 수준급의 내공을 가지고 계셨던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많은 사진들이 자연과 풍경을 주로 다루고 있었고, 내가 이따금씩 심사를 하는 아마추어 사진공모전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그런 류의 사진들이었다. 우리나라 강과 산 그리고 바다, 철새, 새벽풍경, 저녁노을, 야경 등 전국의 여행지를 다니면서 촬영된 사진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적어도 촬영할 당시의 과정과 순간들에 있어서만큼은 그 피사체와 하나가 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사진들로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위한 길잡이 책으로 엮을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본인의 설명이 있지 않으면 효과적인 정보를 디테일하게 만들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제자는 자기가 보기에 그분이 그간 촬영해온 사진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그냥 묻히기엔 너무 아까울 정도의 수준 높은 사진들이라 생각했던 나머지 뭔가 뜻있는 이벤트를 한번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고 확인 받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제자는 그분만의 사진전시회 혹은 작품집을 만들어서 고인의 작품세계도 알리고 가족들에게는 경제적인 큰 도움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천천히 검토해본 결과 제자가 생각했던 것만큼의 특별한 자신만의 스타일이나 독특한 무언가를 찾기 어려웠고 그 분만의 유일한 사진문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자연과 풍경에 대한 다양하고 많은 사진을 경험하였지만 어떤 주제로 어떤 방식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깊어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말해 소재의 단편적인 접근방식으로써의 작업이 대부분이었고, 호흡을 길게 가져가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을 표출하는 식으로 접근하진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분께서 좀 더 긴 호흡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주제와 소재에 관한 고민을 좀 더 일찍 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가져보았고, 이 지점에서 사진을 공부하는 미래의 예비 사진작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얘기를 꺼내보고자 한다.

내가 사진을 공부하는 아마추어 사진가 혹은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강조하는 내용 중 하나는 자연이나 풍경사진을 촬영할 때 이왕이면 좀 더 자기에게 끌리는 특별한 소재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우리들 눈에 보이는 모든 자연과 풍경을 모두 관심 있게 담아낸다는 것은 마치 내가 한식, 양식, 일식, 중식 등의 요리사가 다 되어보겠다는 의미인데, 한번 경험해본다는 의미로는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저것을 다 하다보면 자신의 전문분야가 만들어지기가 쉽지 않다.

이를테면 풍경사진 중에서도 고인돌과 같은 바위가 있는 풍경 쪽으로 분야를 좁혀서 좀 더 깊게 파다보면 다양한 모습들의 바위가 주인공인 사진들을 자기만의 시각으로 촬영하게 된다. 거기에 촬영 시각을 해질 무렵과 같은 특정 시간대에 한정하여 작업하다보면 작업 자체가 점점 특별하고 유일한 형태로 거듭나게 되고 거기에 고인돌의 역사성과 작가의 시각 그리고 작가 내면의 정서가 함께 어우러지면 어느새 자신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전문분야가 생겨 특별한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스톡사진을 운영하는 사이트나 혹은 회사(아이스톡포토, 셔터스톡, 게티이미지코리아, 토픽이미지, 윤익이미지 등)에 사진을 맡겨 적지 않은 수익 창출도 가능하다. 특정 주제와 소재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연출하면 수익 창출을 더해 진정한 의미의 사진작가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음으로 얘기하고 싶은 점은 기회가 되면 개인전시회를 준비하여 자신의 역량을 키우라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대학시절 개인전시회를 준비하기 전까지는 단사진 위주로 작업을 하였는데, 그때까지는 그분 아마추어 사진가보다도 나의 사진 역량이 많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사실 그 당시 나는 대학 동아리에서 사진을 취미로 활동하던 때였고, 전공 학과는 수학과였지만 동아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 나름 사진에 푹 빠져 지낸 시기였다. 군대를 다녀온 후엔 3인의 시각이라는 기획으로 명동 유네스코회관에서 첫 개인전시회를 가졌는데, 나와 뜻맞는 두 명의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준비한 전시회로 각각의 개인전시회나 다름없는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그 전시회가 어찌 보면 내가 아마추어 테두리 안에서 한 걸음 밖으로 발을 내디딘 때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 전시회를 통해 과연 내가 무엇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인지 깊이 고민해보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얻어진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좋을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좀 더 완성도 있는 전시작품을 만들기 위해 주제와 관련된 인문학 서적들을 탐독하고 주변의 지인들과 좋은 이야기도 나눠가며 작품의 부분들과 전체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전시를 준비하는 사람은 그 전시회를 통해 어쩔 수 없이 많은 고민들을 하게 되고, 많은 고민들이 쌓이고 삭혀진 경험들은 자신의 능력치를 한 단계 높여준다. 또한 개인전시회를 통한 경험들은 자신의 작업 방향과 고유한 스타일이 만들어져 사진작가로 우뚝 설 수 있는 계기도 만들어준다.

마지막으로 자기에게 코치가 되어 작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줄 튜터를 찾아보라는 것이다. 사진전공 학생들에겐 주변에 여러 분야의 교수님들이 있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겐 어려울 수 있다. 그렇지만 본인에게 진정으로 필요하고 가려운 곳을 채워줄 수 있는 튜터를 찾는 것과 조언을 구하는 것은 자신이 한 단계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경험이다. 다소 용기를 필요로 하지만 절실히 구해야 얻어지는 게 세상의 이치이고 이는 내가 충심으로 권하고 싶은 조언이다.

그렇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여러 사진가들이 있다. 그중 한분을 소개하면 사진가 남인근과 같은 분이 튜터 혹은 롤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는 사진을 독학으로 공부를 하면서 대한민국은 물론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그만의 시각과 그만의 화법으로 작업하고 있는 사진가로 알고 있는데,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위로와 깨우침을 줄 수 있는 감성사진을 전파하고 있다. 파워 블로거로도 활동하며 < 대한민국 감성 사진 여행지 >, < 위로 >, < 아이슬란드: 기억이 머문 풍경 > 등의 작품집도 발간하고, 자신만의 사진세계를 펼쳐가고 있는 사진가다.

여기까지가 내가 그분 아마추어 사진가에게 못내 아쉬웠던 점이었고, 미래의 사진작가를 꿈꾸는 예비 작가들에게도 미리 경험한 선배로서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아날로그 시대엔 보통 하루에 36컷 짜리 필름으로 5롤 내외로 작업하던 것이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촬영 매수가 수백 수천 매 촬영되는 환경에 살고 있다. 이제는 사진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시간도 매우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무작정 앞으로만 질주하지 말고 한 번씩 쉬어가면서 자신의 작업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리고 이따금 사진동료와 둘레길이나 공원 같은 곳을 가볍게 산책하며 사진에 관한 진솔한 대화의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전국의 맛집 기행을 하면서 말이다.